밀리터리

실전을 통해 터득한 저격의 노하우.. 아트732020-12-11 2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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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2인조 저격수의 저격수 잡기


아래는 2차 세계 대전시 독일군에서 적 사살 두 번째의 기록을 보유한 요셉 세프 알레버그[애칭은 세프이다 ] 병장의 한 저격 실화를 소개한 것이다.
※그의 계급인 obergefreiter는 독일군에게만 있는 계급으로서 한국군에게 비유하면 병장이 가장 유사하다.
 



요셉 '세프' 알레버거 병장



우리의 예상과 달리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아주 늦게 저격에 눈을 떴다.

소련의 전설적 저격수였던 자이체프를 소설화한 영화[Enemy at the gate]에 한 고참 저격병이
나온다.
※자이체프는 스타린그라드 전선에서 적 400명을 저격했었다.


 

소련군 저격수 자이체프

 


그는 독일군에게 저격술을 배우고 귀국했다가 스타린의 군부 숙청 때 비밀경찰에게 고문을 받고 이빨이 다 나간 인물로 설정되었다. 시나리오 작가는 독일과 소련이 한 때[1920년대] 군사 훈련 협정을 맺어 소련의 비밀 기지에서 독일군들이 소련군들을 훈련시켰던 일화를 착각해서 확대 인용 한 것으로 보인다.

동부 전선에서 대규모의 저격수들을 운용한 것은 소련이 먼저였다. 소련은 핀란드 침공 전투에서 핀란드 군의 저격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 서둘러 저격부대를 육성했다. 핀란드는 대 소련 전투에서 역사상 최고 저격 기록을 세운 시모 하이하라는 저격수를 배출하였다. 그는 543명을 사살하였다.


 

시모 하이하 



그가 사용한 총도 핀란드 산 모신 나간트 소총이었다. 핀란드의 모신 나강은 소련 것보다 품질과 명중률이 더 좋았었다. 그는 정교하게 만든 수오미 기관단총도 저격에 사용하였다.

독일은 소련 침공 당시 변변한 저격 전술이나 저격 총도 없다가 소련 저격병에게 피해를 입고 나서 민간 수렵용이었던 고성능 차이스 4x망원 조준경을 군용으로 채택하고 본격적인 저격 전술을 개발해갔다. 차이스 조준경이 채택된 것이 1942년 말이었고 저격에 관한 전문 훈련교범이 탄생한것이1943년 5월이었다.


 

모젤 98k 저격용 소총 



그때까지는 성능이 시원치 않은 1.5배 조준경이 있기는 했으나 고성능이 아니라서 본격적인 저격용은 될 수가 없었다. 그 조준경이 부착된 총도 제대로 장비가 되지 않아, 많은 

독일 일선 부대에는 저격총이나 훈련 받은 저격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소련 동부 전선의 일부 명사수들은 소련군들로부터PU2.5x-3.5x 조준경이 부착된 모신 나강 소총을 노획해서 거꾸로 전 총 주인들인 소련 병들을 저격했었다.


 

조준경이 달린 모신 나강 



독일 저격수들은 실전을 통해서 전과도 쌓고 저격 기술을 연마해갔다. 그들에게는 경험만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즉 초기 독일 저격수들은 독학으로 저격 기술을 터득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 요셉 세프[Sepp] 알레버그도 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나중에 독일군 저격 학교 교관이 되어 자신이 최전선에서 생명을 걸고 습득한 저격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했다.

아래는 그가 동료와 함께 협동하여 적 저격수를 제거하고 저격에서 팀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는 한 전투 기록이다.

황혼이 올 무렵 세프의 대대는 역시 전방에서 철수해서 후방으로 온 인접 대대와 병렬하여 배치되었다.
 
상부로부터 무선 명령에 의해서 두 대대는 각각 구역을 맡아서 추격해오는 소련군을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세프는 그 대대에 자기와 같이 자수성가형 저격수가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른 대대 저격수의 이름은 요셉 로스였다. 뉘른베르그가 고향이고 사격 솜씨 좋은 요셉 로스는 세프와 꼭 같이 소련군으로부터 저격용 모시 나간트를 노획하자 이를 활용해서 저격수의 실적을 쌓아 왔었다.
 
세프는 소문으로 들은 그를 찾아 가서 만났다.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은 금방 의기 투합했다.
 
로스의 대대장은 보병 전투에서 저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세프의 대대장의 협조를 얻어 세프를 잠시 배속 받아 로스와 같이 적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저격 진지를 선정을 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깐깐하게 간섭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두 사람이 충분히 상의해서 최선의 위치도 선정하고 잘 위장된 저격호도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주었다.
 
다른 부대원들이 참호 공사를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고 적의 동태도 살피며 적의 공격시 대응할 저격 계획을 짰다.
 
다음날 아침 08:00. 조용한 아침 공기를 뚫고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진지 작업에 바빴던 독일 병사들에게 날아와 그 중 한 병장을 관통했다.
 
피격된 병장은 비명을 지르며 참호 바닥에 쓰러져서 고통과 쇼크로 온몸을 비틀었다.
 
적의 저격병이 마침내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병사들은 재빠르게 참호 바닥에 엎드리거나 엄폐물을 찾아 은신했다. 단지 피격된 병사 옆에 있던 한 명의 병사만이 전우의 비극에 놀라 그를 부축하느라 엄폐를 하지 못했다. 단 몇 초의 찰나였는데 적의 저격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전우를 부축하던 병사가 적의 총성을 듣기도 전에 다시 날아온 한 발의 실탄이 그의 왼쪽 뒤통수를 관통해서 오른 쪽 눈을 뚫고 나갔다,
 
전우의 비극에 놀라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못했던 그는 오른쪽 안구가 완전히 날아간 자리에 생긴 주먹만한 큰 구멍에서 피와 뇌수를 쏟으며 절명했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조심해라! 저격이다!”  물론 소련 저격병은 독일 병사 누구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전방 경계의 임무가 주어졌던 기관총 사수는 당황해서 무턱대고 MG 42기관총을 총탄이 날아왔던 쪽의 소련군 진지를 향해 난사했다. 물론 표적도 없이 해댄 사격은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적 저격수는 당황해서 머리가 노출 된지도 모르고 난사를 하는 기관총 사수의 머리를 놓치지 않았다.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사수는 사격을 갑자기 중단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어느새 적탄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던 것이다. 기관총 반의 어느 누구도 다시 사격을 시도하지 않고
안전한 곳을 찾아 숨기에 급급했다,
 
세프와 요셉은 자신들이 구축한 저격용 호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나 총성이 나고 이어서 대대장 전령이 숨이 목에 차서 달려왔다. 적의 저격으로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적 저격병을 처리하라는 대대장의 명령도 전했다. 두 사람은 전령과 함께 은폐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적 저격이 가해진 참호로 갔다. 전령은 두 사람의 전사자가 발생한 쪽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전사자들의 분대장이 두 저격수를 반기며 불과 몇 분 전에 벌어졌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상황을 파악한 두 저격수는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다가 방어선의 구석에 덤불로 가려진 한 구석에 설치된 중대 관측소를 보았다.
 
덤불 뒤에 참호를 파서 적의 관측으로부터 완전 차단된 곳이었다. 세프와 요셉은 그 곳이 가장 이상적인 장소라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두 사람은 적의 관측에 노출되지 않게 낮은 포복으로 그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덤불 사이로 적 저격수의 자취를 찾아 전방을 살폈다.
 
눈이 아프게 살펴보았지만 적 저격수의 자취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첫 독일 병사가 피격 당했던 건너 적 진지 쪽을 관심을 쏟아 주시했지만 특별히 의심스런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 속의 몇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물어보며 토론도 해봤다. “네가 만약 소련 저격수라면 저쪽의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 “
 
두 사람은 적의 입장에서 추리해보고 점 찍은 위치를 계속 주시했으나 아무런 특이 동향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렇게 숨 막히는 잠복과 관측의 몇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되었다. 파다만 참호 바닥에 엎드려서 적의 저격을 피하던 한 병사가 뒤가 마려운 것을 참지 못하고 깡통에 급한 일을 보았다.
 
병사는 냄새 나는 그 깡통을 참호 밖으로 던지는 순간 저격수가 발사한 실탄에 맞았다.
 
깡통을 던지기 위해서 오른 손을 위로 들고 철모를 약간 노출 했을 따름인데 적 저격수는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병사는 다른 병사들에 비해 운이 좋았다.
 
실탄은 엇비슷하게 맞은 그의 철모에서 튕겨서 깡통을 든 그의 오른 팔에 명중했다. 그는 팔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은 건졌다,
 
적 저격수가 사격하는 순간 세프와 요셉은 마침 적 진지의 그 쪽 방향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미동도 않고 숨어있던 적 저격병은 그제야 작은 꼬리를 내보였다. 적 저격수가 방금 발사했던 총구 앞에 있던 풀 몇 줄기가 발사와 동시에 흔들거리는 것이 두 독일 저격수의 눈에 포착된 것이다.
 
두 독일 병은 그 저격수의 위치를 보고 감탄했다. 그는 작은 둔덕의 반대편으로부터 굴을 파고 들어와 둑의 전면에는 작은 구멍만 내고 전방의 독일 부대에 저격을 했으니 발견하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 저격수의 총구 폭발력이 풀을 흔드는 바람에 그 완전무결했던 잠복처가 노출되었던 것이다. 다만, 풀에 가려진 구멍의 정확한 모습과 위치는 파악이 힘들었다.
 
두 독일 저격수는 적 저격수의 다음 행동에 관심과 기대를 가졌다. “저 녀석이 과연 사격 후 빠르게 잠복진지 이동을 할 것인가?”  이렇게 전면이 적의 관측에 장시간 노출된 장소의 저격수는 저격 후 빠르게 진지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가 잘 위장된 그 곳에 그냥 머물러 있을 가능성도 컸다. 굴을 파는데 힘이 들었고 그 은폐성에 자신을 가졌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지켜보던 두 사람은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날 아침부터 총알이 날아온 방향이 한결같이 그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적 저격수가 그쪽에 계속 머물러있다면? 세프와 요세프는 꽁꽁 숨어있는 그 소련 저격수의 총탄이 튀어 나오는 은신처의 구멍를 더 확실하게 노출시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소련 저격수를 노출시키기 위한 계략을 써보기로 하였다.
 
가짜 목표를 만들어서 적으로 하여금 사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세프는 독일 병사들에게 개인 지급되는 빵 주머니에 풀을 넣어서 빵빵하게 만들고 철모를 씌워서 독일 병의 머리로 위장하였다.


 

독일군 빵 주머니 



이를 나무에 꽂아서 다른 병사에게 건네 주고 신호에 따라 협조하도록 부탁했다. 세프는 그 자리에 대기하고 요셉은 약 50미터 떨어진 곳의 은폐된 장소로 조용히 이동했다.
 
준비가 되자 두 사람은 적의 추정 위치에 조준 십자선을 지향하고 조준 자세로 대기했다.
 
위장 빵 주머니의 미끼를 가진 다른 병사는 그것을 10여 분 간 참호 위로 슬쩍 슬쩍 움직여서 진짜 사람 머리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소련 저격수는 독일 저격수가 던진 음흉한 미끼를 덥석 물어 버렸다. 그는 빵 주머니를 독일 병사의 머리로 오인하고 즉시 발사했다.
 
그가 발사하자 마자 이미 의심 지역을 조준하고 있었던 세프와 요셉도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총알은 적 저격수의 쥐구멍 같은 저격 구멍으로 정확히 파고 들어갔다.
 
몇 분이 흘러갔다. 두 사람은 적 저격수가 숨어있던 땅굴의 둔덕 뒤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있더니 무엇인가 뒤로 운반되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죽은 적 저격수의 사체였다.
 
이 위험천만한 순간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 소련병이 둔덕 위로 망원경을 대고 독일군 쪽을 살펴보았다. 아까 죽은 저격수의 관측병으로 추측되는 병사였다.
 
그의 호기심은 즉각적인 죽음으로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세프와 요셉이 동시에 즉시 발사한 두 발의 총탄이 가하는 충격에 그의 머리는 마치 잘 익은 호박이 터뜨려지듯 피를 뿌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단지 그의 소련제 망원경만이 둔덕 위에 그냥 남아 있었다.
 
이제는 독일군의 저격 위협에 전신을 감추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측은 소련군들이었다.
 
적 저격수들의 위협이 제거된 후 독일 병사들은 여유를 가지고 참호 공사를 마무리 할 수가 있었다.
 
환상의 콤비를 이룬 두 사람은 대대가 같이 배치되어 있는 동안 팀워크를 이루어 계속 전진해오는 소련군의 공세를 저지했었다. 그러나 요셉의 대대가 전선 다른 곳으로 이동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쉽게도 헤어져야 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오랫동안 하며 섭섭한 이별을 했다.


 

1945년 독일군이 전방 저격수들에게 지급한 반자동 소총 G-43을 든 세프 



세프는 요셉과의 협동 작전에서 저격이란 2인 1조로서 행동하는 것이 절대 더 효과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관측에서도 두 쌍의 눈들이 한 쌍의 눈보다 낫고 적의 기만에서도 파트너가 필요했으며 사격에서도
두 발의 실탄이 한 발보다도 더 명중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저격병과 관측병이 2인 1조가 된 저격 팀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중대장과 대대장에게 건의했고, 그 뒤로 저격 때 그는 항상 유능한 한 명의 조수를 지원받았었다.
 
월남전이라는 실전에서 얻은 많은 경험[적병 93명을 사살한 저격왕 칼로스 해치칵 해병 상사등을 배출]을 바탕으로 완성한 오늘날 미군의 저격 전술 교리는 저격병들이 2인 1조로 활동하는 것을 저격 전술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저격술을 독학으로 깨친 그는 순수한 경험만으로 저격술의 진수를 터득했다고 해야겠다.

출처: https://mnd-nara.tistory.com/131?category=332956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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