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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의 한국전쟁 출동기-제3편- 아트732020-12-09 15: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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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의 한국전쟁 출동기 -제 3 편-



테세우스와 호위함들은 사세보 항에서 보급과 정비, 휴식을 끝내고 3월 22일 07시 
아홉번째 출동을 했다. 출동 첫날은 통상적인 정찰 활동과 대지 공격을 위한 출격을 하였다.
 
3월 24일 테세우스의 씨 퓨리기들은 적지에서 공산 차량들의 대규모 집결지를 발견하고 이를 공격해서 다수의 적 차량들을 파괴하였다.
 
고든 스미스 중령기는 적이 쏴 올린 50구경 실탄에 맞아 연료 탱크에 구명이 뚫렸다 .
 
연료탱크는 셀프 씰링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량의 연료가 누출되었다. 스미스 중령은 연료가 다 새어나가서 거의 텅 빈 연료탱크의 씨 퓨리기를 겨우 수원 공군기지로 몰고 가 착륙하였다.
 
이날 공산측의 대공사격이 극심해서 사리원 상공에서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적 40mm 대공포에 명중되었지만 테세우스로 귀함하여 가까스로 착륙하였다,
 
다른 한 기의 조종사 시력이 갑자기 강렬한 햇빛에 손상되어 항모에 착륙이 힘들 것 같자, 수원 미 공군 기지로 가서 역시 연료가 모두 고갈 된 상태에서 가까스로 착륙했다.
 
25일은 악천후로 춭격을 하였지만 26일은 통상적인 정찰과 초계 임무를 수행하는 출격을 하였다.
 
27일에는 출격을 했으나 낮은 구름과 비가 내려 두 기가 영 함 커뮤스의 해안 목표 폭격을 지원하기 위한 비행만 했을 뿐 모두 일찍 임무를 종료하였다.
 
28일은 정비 및 휴식일로 출격이 없었다. 29일에도 통상적인 출격이 있었다.
 
30일 오전에는 북한이 해안에 감추어 둔 적 선박 6척을 발견하고 모두 파괴하였다. 코이 대위의 전투기가 대공포에 맞아 좌측 날개에 구멍이 생겼으나 무사히 귀환하였다.
 
4월 1일 화이어플라이기들은 해주 비행장의 격납고를 공격하였다. 테세우스는 다시 사세보 항으로 함수를 돌려서 4월 2일 오후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4월 3일 미 해군으로부터 다른 시콜스키 헬리콥터의 교체 승무원의 파견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함대 사령관 윌리엄 앤드류스 경이 이임하고 A.K 스코트 몽크리프 소장이 새로 취임해왔다. 그는 새로 극동에 파견한 순양함인 벨파스트에 승함하여 4월 11일 사세보 항에 도착했다.
 


왼쪽이 영 순양함 벨파스트


4월 10일 미그기 한 기가 압록강 앞 바다에 있는 신미도 근해의 얕은 개펄에 추락했다. 미 5공군은 이의 회수를 강하게 추진하였다. 영 순양함 케니아에게 이 회수 임무가 주어졌다. 미 5공군은 항공지원과 수색기, 그리고 헬리콥터 지원을 약속했다. 구난선인 USS 터그가 이 작전에 합류하였다.
  
이 날은 특히 미 공군의 공중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날이었다. B-29기들이 바로 북방의 압록강 철교를 폭격했었고 공산 미그기들이 요격했었다. 2 기의 B-29기가 격추되었다.

 


신미도 


케니아는 최고 속도로 질주하여 이날 오전 10경에 현장에 도착했다. 세 척의 영연방[영국 캐나다] 구축함 누트카, 와라뭉가, 아메티스트도 이 작전에 동행해서 인근 해역을 수색했었다.
 
미그기 잔해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격추된 B-29기의 승무원 사체 한 구를 인양하였다. 작전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4월 16일 종료되었다.
 
테세우스의 열번째 출동은 4월 8일이었다. 이번 출동 해역은 황해가 아니라 한국 동해였다. 동해에서 작전하던 미 해군 대형 항모들이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해서 대만 해협으로 급파되었기 때문에 테세우스와 미 중형항모 바타안이 함께 이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급파 된 것이다.
 
테세우스가 동해에서 작전하는 동안 서해안에서는 미 해군과 영연방 해군함들의 연합 함대가 초계임무를 계속하였다. 이런 연합 작전은 처음 있던 일이었다.
 
테세우스의 수병들이나 조종사들은 경험을 많이 쌓아서 미 해군 항모 바타안의 해병 조종사들보다 월등히 기량이 뛰어났었다.
 
비록 미 항모 바타안의 사출장치가 두 기나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영 항모 테세우스보다 더 우수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출기가 한 기 밖에 없는 테세우스가 더 앞선 실적을 발휘하였다.
 
동해 작전은 4월 15일까지 일 주일간 행해졌는데, 테세우스는 276회 출격을 기록했는데 비해 바타안은 244회 출격만 기록하였다. 이 일주일간 양 함은 각각 하루 동안씩 정비 휴식일에는 출격을 하지 않았다.
 
작전 기간 중 강한 북동풍이 계속 불어 바다는 황천항해를 내내 해야 했다. 테세우스는 이 불순한 일기 속에서도 단 한건의 이착륙 사고가 없었다. 영 조종사들의 노련한 기술이 이 무사고 이착륙 기록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적의 대공 사격과 불운으로 이 마지막 출동중 5기의 씨 퓨리기와 1기의 화이어플라이기가 손실되거나 대파되었다.
 
4월 9일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원산의 철도 시설과 창고 그리고 군 부대 사용 빌딩들을 대대적으로 공습하였다. 악명 높은 원산항의 기뢰 설치 기지로 의심되는 시설도 공습하여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케 했다.
 
동해안에 대한 공중 정찰도 계속되어 공산 선박과 어선들이 기관포와 로케트로 파괴되었다. 다음날 두 기의 씨 퓨리기들이 미군의 두 콜세어 기들로부터 느닷없는 후방 공격을 받았다.

 


미 콜세어기들-해군과 해병대가 사용했다. 


씨 퓨리기들을 공산기로 오인했었기 때문이다. 한기의 씨 퓨리기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한 기는 격렬한 회피 기동으로 콜세어기의 공격을 따돌리고 피했다. 콜세어 기들은 귀환하자 공산군 LA-9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다.

 


소련제 LA-9기 


함경도 고원 일대에서 정찰 임무와 철도 공격 임무를 수행 중이던 다른 씨 퓨리기들은 콜세어 기에게 피격당한 두 씨 퓨리기들로부터 긴급 지원을 요청받아 달려 가다가 H. 존슨 대위의 씨 퓨리기가 적 37mm 대공포에 명중되었다.

 
그의 씨 퓨리기는 한 계곡 사이에 불시착을 시도했지만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전사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포로 교환 시에 송환 되었다.
 
쥬리안 대위도 추락한 그의 기체 주위 상공을 수색하다가 역시 적 대공화력에 명중되어 크게 손상을 입었다. 그는 겨우 씨 퓨리기를 몰고 남으로 비행하여 강릉 비행장에 비상 착륙하였다. 착륙 중 그의 전투기는 전복되었지만 그는 안전하게 탈출하였다.
 
11일에은 낮은 구름과 시계 불량으로 첫 출격만 빼고 나머지 출격은 모두 취소되었다.
 
다음 날인 12일, 화이어플라이기들은 흥남 지역의 교량을 폭격해서 파괴하였다.
 
베일리의 화이어플라이기가 적탄에 맞아 테세우스에서 40마일 떨어진 바다에 불시착했다. 두 명의 승무원은 해면에서 40분간 표류하다가 테세우스에 파견된 미 해군 헬리콥터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씨 퓨리기들은 계속 동해안의 적 탱크들과 다른 군사목표들을 공격했으며, 영 순양함 만체스터와 세인트 폴, 그리고 행크 함들의 해안 포격을 위해 목표 발견과 사격지휘를 위한 관측 활동을 하였다.
 
테세우스는 13일 바다에서 해상 급유를 받았다. 당일 급유가 끝난 11:40분 첫 출격이 있었다.
 
함흥 지역 정찰에 나선 험프리 대위의 기가 대공 사격에 피격되었다. 그의 함재기는 작은 논에 불시착하였고, 그는 항공기를 기술적으로 미끄러지게 해서 논 옆의 물이 마른 개천으로 처박히게 하였다. 이 개천은 지대가 낮아 접근하는 적의 사격으로부터 엄폐되게 하였다.
 
그의 편대기는 공중에서 적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추락기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해상에 위치해 있던 테세우스에서 구조 헬리콥터가 두 기의 씨 퓨리기의 호위를 받으며 날아 왔고, 38분 뒤 조종사는 구조되었다.
 
그러나 그는 중상을 입고 있었다. 머리의 상처가 무척 컸고 무릎의 상처도 상태가 안 좋았다. 그는 만체스터 함의 솜씨 좋은 외과 전문 군의관으로부터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그날 오후 화이어플라이기들은 세 개의 교량을 파괴했고 씨 퓨리기들은 송탄리의 창고를 폭격하였다. 더해서 원산 북방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적 병력 집결지를 기총 소사하였다.

 


미 해군기에게 파괴 된 도곡리 다리 


14일 씨 퓨리기들이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 화이어플라이기들은 흥남 지방의 다리들을 폭격하였다. 함재기들은 한반도를 가로질러가 진남포의 군수물자 집적소와 탱크들 그리고 작은 선박들을 공격하였다.
 
 
지역의 밀집한 대공포대들이 작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보우만 대위의 함재기가 적 대공포화에 명중되어 불시착했으나 역시 접근한 적의 치열한 사격 중에 테세우스의 헬리콥터에 의해 구출되었다. 구출 헬리콥터를 조종한 미 해군 조종사 로저 길은 영국 정부로부터 DSC훈장을 받았다.
 
15일은 짙은 안개로 인해서 단 세 번의 출격만 있을 뿐이었다. 테세우스가 주축이 된 TE95.11 기동함대의 동해 작전은 4월 15일 오후 16:30분 종료 되었다. 미 항모 바타안은 사세보 항으로 돌아가고 테세우스와 호위함들은 한반도 황해로 향했다.
 
16일 극동에 도착한 기동함대 사령관 스코트 몬크리프 제독은 테세우스에 승함하여 기동함대를 지휘했다.
 
17일 북한 지상 목표들이 비행거리에 이르자 테세우스는 공격 함재기들을 발진시켰다. 사리원에 새로 건설한 북한의 비행장은 너무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하여 완전 사용 불가능 상태가 되었다. 다시 수리된 교량들도 파괴되었다.
 
해밀턴 대위의 함재기가 대공포화에 맞아 겨우 귀함하다가 함에서 60마일 떨어진 바다에 불시착했다. 그러나 그는 55분간 찬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역시 테세우스의 헬리콥터에게 구조되었다.
 
19일 기상이 악화되어 구름이 낮게 깔려 시야를 방해하고 폭우가 내렸다. 이 날 기동함대 TE95.11은 사세보 항으로 귀항하였다.
 
이로서 테세우스의 극동 해역 파견 임무는 끝나고 그 후임을 23일 새로 도착한 영 항모 그로리 함에게 인계하였다.
 
테세우스는 큰 환송 속에 사세보 항을 출항하여 홍콩으로 귀환하였다.

6.25전 참전 기간 동안 테세우스는 86일간의 작전 일에 3,446회 출격하였다.  <끝> 

출처: https://mnd-nara.tistory.com/62?category=332956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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